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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정인이사건

이한기 마산대학교 교수(칼럼니스트, 본사 논설위원)

오웅근 기자 | 기사입력 2021/01/28 [20:25]

[칼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정인이사건

이한기 마산대학교 교수(칼럼니스트, 본사 논설위원)

오웅근 기자 | 입력 : 2021/01/28 [20:25]
이한기 마산대학교 교수(칼럼니스트, 본사 논설위원)
이한기 마산대학교 교수(칼럼니스트, 본사 논설위원)

착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은 예수가 들려준 유명한 비유 중 하나이다. 루카복음에 기록되어 있으며, 제자들이 추구하기를 바랐던 기준이 정의되어 있다.

예수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하자 율법학자는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이때 예수의 비유가 시작된다

길을 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빼앗기고 심한 상처를 입었다. 신앙심이 깊은 두 사람, 사제와 레위인은 모른 체하며 지나쳐버린다. 

그때 사마리아인이 다친 사람의 상처를 싸매고 주막으로 데려가 주인에게 그 사람을 돌봐주라면서 돈까지 준다. 예수의 이야기를 들은 당시 유대인들은 충격을 제대로 받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경멸하고 이교도 하층민으로 천시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야기를 마치고 물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대답은 명백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는 다시 말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복음 10:25~37).

당시 사마리아인은 배척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민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유 속에서 나그네에게 옷과 먹을 것과 쉴 자리를 내어주면서 도와준 유일한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예수는 질문한 율법학자에게 나그네를 가장 도와줄 것 같지도 않고 얻을 것조차 아무것도 없는 사마리아인이 실제로 나그네의 이웃이었다고 설명했다.

예수는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로 대중들을 놀라게 했는데,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휼륭한 예이다. 오늘날에는 논란이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사마리아인을 칭찬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이 비유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2020년 10월 서울 양천구에서는 끔찍한 아동 학대 살인 사건이 있었다. 2년도 살지 않은 아이의 온 몸에 수많은 멍과 처절한 골절상, 그리고 병원 응급실에 도착을 했을 때 장기가 파열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다. 정인이 사건을 생각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정인이는 입양을 했다고 한다. 차라리 입양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입양을 했다고 하더라도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발생된 것이다.

사회는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최소한으로 보호해 주어야 할 공동체다. ‘아동학대’는 이 사회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동학대’, 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얼마나 암묵적으로 아이들이, 또한 사회적 약자들이 괴로워하며 힘들어하며 두려움 속에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예수님도 선한 사마리아인을 통해 이웃에 대한 비유를 하지 않았을까. 왜 강도당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레위인이나 율법학자는 외면했고, 사마리아인은 도움을 주었을까?

레위인이나 율법학자는 나그네의 형색이 남루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신분이나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했고,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강도당한 사람의 신분보다는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한 데서 차이가 났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2살의 어린 정인이에게 양부모도, 경찰도, 이웃도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지를 못했다는데 있다. 정인이 아동학대 사건은 사회적으로 꽤 파장이 오래 지속될 것이다.

예전에 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난 폭력적인 사건이 ‘도가니’라는 영화를 통해 법 제정으로 이어진 일이 있었다. 이번 일도 아동학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학대받는 아이가, 자신의 의사조차 올바로 표현할 수 없는 16개월 아이가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약성경에도 “사회적 약자,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절대로 괄시하지 말아야 한다(탈출기 22장 20-21)”고 기록되어 있다. 정인이 사건이 ‘착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이 제정되는 계기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상황에서 생명이나 신체에 큰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자는 것이다. 프랑스 형법 제 63조 2항에서 이러한 내용이 있고, 독일, 이탈리아, 핀란드, 스위스, 폴란드, 영국, 스위스, 네덜란드 등 많은 유럽 국가와 유럽 법에 영향을 받은 남미 국가, 그리고 미국 50개 주 중 31개 주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으로 구조거부 죄를 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제화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제기된다. 우리의 경우 같은 상황에서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에 해당하는 구조거부 죄를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제한적으로 보호자에게 혹은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 장소를 소유한 사람에게 일정 이상의 도덕적 책임을 강제하게 하는 법을 제정한다면, 한국 여론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진다.

착한 사미리아인 법은 도덕적인 판단에 맡길 문제일까? 법으로 의무를 강제해야 할까? 좀 더 법 제정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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